인사말

발그래협동조합에는 엄마들이 많습니다. 젊은 시절 그녀들은 한창 잘 나갔습니다. 피아노를 전공했었고 작고 날씬했던 P, 건축학도로 결혼 전까지 현장에서 근무했던 L, 집안의 막내딸로 어려움없이 컸었던 K, 모두 발달장애인의 엄마들입니다. 그녀들은 각자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제는 장애인 엄마로 불리고 있습니다.

 

제가 그녀들을 만나게 된 계기는 장애인가족들과 여행을 가는 동아리활동을 통해서입니다. 발달장애인과 장애인 가족들은 여행을 가기 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반 이상이 해외여행의 경험이 있는 지금, 장애인과 장애인의 가족은 국내여행조차도 쉽지 않습니다. 발달장애인은 규칙적인 일상을 선호하기 때문에, 일상의 생활리듬이 깨지면 불편해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여행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 같이 동행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여행을 가기 수월할 것입니다. 여행을 자주 가게 되면 낯선 활동들이 익숙해지고, 이를 통해 사회성을 익힐 수 있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데에는 수많은 사람의 관심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장애인 부모들에게 더 큰 고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내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집에만 있어야 하나?”, “내가 죽고 나면 내 아이는 누가 돌보나?”와 같은 걱정입니다. 만 18세 이상의 장애인은 의무교육기간이 끝나면 갈 곳이 없습니다. 의무교육기간이 끝나는 순간 장애인 자녀는 온전히 부모, 특히 엄마의 몫이 되며, 엄마는 장애인 자녀와 함께 집에 갇히게 됩니다. 엄마가 장애인 자녀만 돌보게 되면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 다른 비장애 자녀와 엄마의 관계가 소홀해지게 되고, 가정이 위기에 놓이기도 합니다.

 

장애인 가정의 문제는 안됐기는 하지만, 그 가정의 문제일 뿐일까요? 우리나라 추정 장애인 인구는 2017년도 기준으로 약 267만명으로 전 인구대비 장애 출현율은 5.4%이며, 인구 1만 명 중에는 539명이 장애인입니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입니다. 이 의미는 다중적입니다. 첫째, 장애인의 수가 많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이들에 대한 정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둘째, 더 이상 장애인을 소수라고 얕볼 수 없으며, 이들이 뭉치면 사회적 약자가 아니고 사회적 다수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장애인의 문제, 특히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중증장애인의 문제는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습니다.

 

여행에 이어서 우리는 대학교 내에 문제해결을 위한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장애인부모들과 뜻을 같이하는 교수들, 대학생들, 교직원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으며, 어떻게 일자리 문제에 접근해야 할지 고민하였습니다. 대학에서는 지역사회 약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했습니다. 엄마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기 시작했고 창업 준비를 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대학은 좋은 공간입니다. 다양한 전공의 전문가들이 상주하고 있으며, 도서관이나 체육관과 같은 문화시설이 있으며, 지역사회의 상생을 돕는 산학협력단과 같은 인프라가 구비되어 있습니다.

 

2018년 올해 초에 드디어 발달장애인들과 엄마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발그래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서투르고 어설프게 시작한 협동조합이지만, 생각보다 아주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들에서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며, 젊은 대학생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신제품을 개발하고, 사업 홍보를 하는 등 즐거운 일이 더 많았습니다.

 

우리는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내 아이가 나와 함께 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남들보다 먼저 어려운 길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힘들게 시작한 길이지만, 우리보다 뒤에 오는 분들은 더 수월하게 가시라고 꽃길을 만들겠습니다. 꽃길을 만들려면, 자갈도 치우고, 잡초도 뽑아야겠지요. 우리가 지나간 뒤에 꽃길이 만들어 진다면 수고를 감수하겠습니다.

 

발그래협동조합의 성장을 격려하여 주시고, 지켜봐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전국에 수많은 발그래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우리랑 함께 가시고 싶다면, 언제든지 두 팔 들고 환영합니다.

 

하 주 현

건양대학교 초등특수교육과 교수

발그래협동조합 이사장

발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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